KoreanFoodie's Study
저, 파프리카는 시킨 적이 없는데요? 본문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모난 사람, 둥글둥글한 사람, 날카로운 사람, 포근한 사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성격이 유하고 고집이 세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혹은 특정 부분에서 매력이 넘쳐 흐르거나.
음식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음식도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것은 사랑받기 힘든 법. 그런 의미에서 나는 파프리카가 싫다.
물론 파프리카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요리에서 파프리카의 향이 다른 재료들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몇가지의 예외가 있는데, 중식 요리에서 쓰이는 파프리카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팔보채나 중화풍 야채볶음에 들어가는 파프리카는 신기하게도 자신을 숨을 약간 죽인 채로 은은한 개성을 낸다. 위의 가지튀김에 곁들여 나온 파프리카가 그러했듯이.
파프리카는 다른 쓰임도 있다. 예를 들어, 파프리카는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어 다채로운 색감을 담당한다. 색감이라는 게 생각보다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보며 '눈으로 먹는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이니 어쩌면 파프리카는 필요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월래순 교자관에서 홀로 앉아 뜨거운 가지튀김을 파프리카와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들었다.
가리봉동 저잣거리에서
월래순 교자관에서 나와 골목 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가리봉 시장이 나온다. 맞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온 가리봉동이 바로 이 곳이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가산동으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예전부터 시장이 좋았다. 딱히 물건을 산다거나 시장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시장에서 느끼는 향취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시장을 짝사랑하기 시작한 걸까?
군인이었을 당시, 휴가를 나와 국내여행을 자주 갔었다. 돈도 없고 생각도 없어 호화롭게 놀지는 못했지만, 건강한 두 다리를 마음껏 빌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설레는 마음으로 휴가 전 꼼꼼히 짰던 동선에는 항상 그 지역의 시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3일장, 5일장, 야시장 등등 언제나 잠시라도 시장에 들러 눈요기를 했다.
모순적이게도 시장에서 물건을 잘 사지는 않았다. 나는 그리 깔끔한 사람이 아니지만, 청결한 것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매했으니.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시장에 가는 것을 즐겼었다.
왤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산 시내의 시장을 자주 들르곤 했다. 길다란 제주산 은갈치는 자신의 꼬리를 자랑하듯 늘어뜨려져 있었는데, 나는 은갈치 옷을 벗기면 은이 나오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생선 비린내를 옷에 묻히고 다녔다.
그 시절의 추억이 몸에 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시장이 끌리는 이유는 알 수 없는 채다. 소시민처럼 살고 싶지만 소시민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물일까? 아, 참고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만 언급해두겠다.
시장을 좋아하는 것은 나의 예전 여행관과도 연관이 있는데,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홍콩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잠시 미루도록 하자. 대신 여행에 대한 내 예전 생각을 간단히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떠나요 둘이서
여행을 간다는 건 어떤 걸까?
어떤 사람은 전망 좋은 호텔에서 편히 쉬고 오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관광지 스팟을 최대한 많이 찍을 수 있는 동선을 짜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진짜 여행'이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관광지도 들러야 한다. 멋있고, 독특한 곳은 꼭 가보고 싶고, 맛있고 특색 있는 요리가 있다면 맛보고 싶은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가치가 있는 건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느끼는 것이었다. 뭐, 돈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싸구려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었던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숙소에서 도망쳐 나와 내 몸을 겨우 뉘일 수 있는 캡슐호텔로 도망친 결과, 프랑스 친구와 친해질 수 있었으니. 술값도 대신 내줬을 정도면 좀 친해졌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렸을 때만 허용되는 미친 짓도 하며 재밌게 논 것을 돌이켜보면, 그 친구에게도 나와의 추억이 나쁘지 않은 술안주가 되었을 거라고 본다.
아직 그리 다양한 국가를 많이 가 보진 못했지만, 일본에서 한 달 가량을 여행한 후에 스스로 여행지에 대한 집착이 조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느 곳이든 거기도 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형태는 조금 다를 수 있어도, 파프리카처럼 독특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더러 섞여 있어도,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파프리카같은 사람들이 필요선일지도 모른다. 커다란 접시에 놓인 파프리카는 다른 수수한 야채들과 섞여 요리에 특이한 풍미를 더해주는 존재이니.
나는 여전히 파프리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파프리카랄까. 웃기게도, 팔보채에 파프리카가 빠진다면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다. 파프리카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음식 취향과 함께 여행관도 조금 바뀐 듯 하다. 이제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순간이 제일 좋다. 친구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연인이 되든.
그래서 반드시 새로운 곳을 가야한다는 집착도 줄어들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어디든 여행이 된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곳이 아니더라도, 익숙하다 못해 정겨운 곳을 가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이 아닌 여행이 없다. 물론 때로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위해 익숙함이라는 물컵에 새로운 자극을 한 방울 떨어뜨릴 필요는 있겠지만.
그렇게 홀로 감상에 젖어 다음에 월래순 교자관에 오게 되면 반드시 군만두를 시켜보겠노라고 조용히 다짐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오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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