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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Foodie's Study
이 병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한 번 왔다고 해서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이미 겪어 보았다고 해서 더 견디기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공허함이 내 몸속을 파고든다. 햇살의 줄기, 그 속에 담긴 입자 하나하나가 내 몸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듯이, 공허의 알갱이들은 깊숙히 내 속으로 휘몰아친다. 나는 그 녀석이 올 때마다, 곧 넘쳐 흐를 것만 같이 부글거리는 냄비를 든 아이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따뜻해야만 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싸구려 골판지가 우그러지는 소리처럼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마치 대여기간이 정해진 소꿉놀이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불치병. 지독한 병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환자는 오늘도 연인의 시간을 빌려쓰려 휴대폰을 들어 밝은 목소리를 꾸며낸다.
또각또각. 딱딱한 구두 소리가 적막한 회의실을 울린다. 나는 늘 여자들이 왜 구두를 좋아하는지 궁금했었다. 기껏해야 든 생각은 '불편하지 않을까?' 정도의 아저씨다운 발상 뿐이었다. 그래서 누나의 구두를 몰래 신고 방 한바퀴를 돌았다. 아니, 사실 한바퀴가 아니라 세 발자국 정도를 걸었다. 너무 불편했다. '도대체 여자들은 이걸 어떻게 신고 다니는거지?' 그런 생각과 함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한한 존경심이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패션에 무지한 나조차도, 얼죽코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들어왔다. '얼어 죽어도 코트'. 그만큼 코트가 멋있으시단 거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코트가 멋있다고 하는걸까. 따뜻하지도 않은 부직포를 왜 그리도 좋아할까? 구두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존재..
내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깔대기에 한번 걸러 기록하는 하수인이 아닐까. 지금의 내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가. 유입이 있어야 유출이 있다. 그렇기에 많은 작가들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난다.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나오는 작품은 외로움 섞인 인간 내면에 대한 고찰만이 담겨 있을거야, 아마.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베껴와야 하니까. 훔쳐야만 하니까. 오늘도 타인의 생각을 나의 위대한 사고인것처럼 포장하는 일에서 소소한 쾌락을 느낀다. 나의 도벽. 나의 표절. 자수를 하기 위해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린다. 슬프게도 내 글은 나의 범죄기록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걸까. 나를 위해서겠지. 분명 나..
못난 내 자신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내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던 공백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일이었을텐데, 지금껏 나는 사라진 조각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 타인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깎아내리고자 하는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놈은 분명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공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뿌리를 뽑으려는 시도조차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언젠가 새로운 씨앗이 그곳에 싹을 틔울 테니까.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바로 빈 공간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용하고 위로함으로써, 마음 속 허공을 자기애로 가득 채워보자. 분명 시기와 질투,..
귀찮아.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쥐 죽은 듯 살아도 세상은 늘 그렇듯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하다. 때론 죽음에 대해 꿈꾼다. 영원한 침묵이 무엇일지 궁금하기에. 누군가는 나를 부른다. 부름에 반가이 응답할 수밖에 없는 미력한 존재임을 다시 확신하는 순간이다. 젠장, 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삼킨채 미소를 뿌리러 나가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영혼없는 위로를 건내줄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나도 언젠가는 누구를 부를 것이기에.
요즘 나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밴드에 푹 빠져있다. 나는 영화나 책보다 노래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라, 내 기분과 감정상태에 따라 플레이리스트를 바꿔 듣곤 한다. 때에 따라 신나는 노래를 듣고 싶을 때도, 슬픈 노래를 듣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복합적인 분위기도 좋아한다. 사실, 흥겨우면서도 서글픈, 그렇지만 처지지 않을 정도로 정이가는 그런 음악을 만드는 밴드를 찾은 것 같다. 요즘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언제나 디스코를 듣는다. 디스코에 복합적인 향이 섞여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그런 식으로 디스코를 표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통배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독특하고 유쾌한 것을 ..
바야흐로 예약대란이다. 유명하고 맛있는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이 거의 필수가 된 시대가 열렸다. 물론 너무 장사가 잘 되서, 굳이 예약 따위 받지 않는 음식점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곳들은 추운 겨울날 롱패딩을 부여 잡으며 같이 온 친구나 연인들과 펭귄 놀이를 할 준비를 해야한다. 아버지는 자칭 미식가이기에 맛집을 찾아가시는 편이다. 포장도 자주 해 오시고. 자칭 미식가인 아버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혼(混)식가에 가깝다. 뭐든지 비비고 섞어 드시니까. 전문 용어로 쓰까 묵는다고 하던가? 맛집의 세계는 냉혹하다. 잘되는 곳은 잘되고, 안되는 곳은 안되는 법.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음식점의 경우 그 편차가 제법 크다. 바로 옆집에 붙어 있어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과, ..
혼령이나 영혼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비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주장한다. 기이한 현상 자체가 존재했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해당 현상의 발생 원인을 귀신이나 영혼처럼 기존 과학의 테두리 내에서 정의되지 않은 개념들을 통해 풀어나가려는 시도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반박하고자 한다. 오히려 그러한 기현상들은 현재 과학 기술의 발전 수준이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원숙하지 않다는 증거로서 활용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과학'의 본질이 지식의 총체가 아닌 현상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방법론'임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 (중..
평소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사람들도, 여행을 가면 언제 그랬냐는듯 찰칵찰칵 사진을 잘도 찍어댄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명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진보다 더 나은 건 없을까. 중학교 2, 3학년 시절, 내 담임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선생님께서는 여행을 가서 글을 쓴 기억을 종종 이야기해 주셨다. 하루는 허드슨 강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드슨 강에서 찍은 사진은 흐릿한 기억을 완전히 되살려주지 못했지만, 강가 벤치에 앉아 썼던 글을 읽으니 그 당시 본인이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상황에 놓였었는지 생생히 기억난다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사진이 남는 거라면, 글은 어떠할까. 현재의 감정을 글로 남긴다면 그건 ..
뚜벅뚜벅.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먼 거리를 가야 할때면 어쩔 수 없이 무언가에 내 몸을 맡겨, 내 튼튼한 두 다리에게 짧은 휴가를 허락해야 한다. 스무 살의 나는 차에 관심이 많던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삐까번쩍한 외제차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만약에 그때의 내가 포르쉐나 람보르기니를 갖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면, 돈을 악착같이 벌기 위해 더 노력했을지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허무주의를 숭상하며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동경했었다. 나그네, 듣기에는 참 좋은데 나그네는 배고프고 누덕누덕한 옷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했었다(홍콩 야시장에서 떨이로 산 진짜 헝겊조각을 학교에 입고 다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추억인데, 옆에서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