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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사랑에 관하여 #4 : 무뎌지거나, 애틋해지거나

GoldGiver 2026. 1. 11. 21:00

B에게서 전화가 왔다.

B라는 친구가 있다.

허리가 아파 고생하던 친구.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통증이 완벽히 사라지지 않아 힘들어하는 친구.

그 친구는 언제나 진실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실된 사랑이란 뭘까. 그 친구와 소주 한 잔 너머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결론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냥 사랑도 아니고 진실된 사랑이라니. 어려울 수밖에 없지.



모든 사람은 외롭다

모든 인간은 외롭게 태어난 것일까?
모순적이게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외로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랑이 당최 무엇인지 분해하는 작업이 너무나도 어려웠기에, 사랑의 필요성으로 눈을 돌리자고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내면적인 외로움은 제거해야할 대상일까? 포용해야 할 장점일까?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것일테지만, 어렵다.. 외로움!

때로는 슬픈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때론 우울함에 젖는다.

맑은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듯 갑작스러운 외로움이 나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날 가랑비가 장대비가 되듯이 스스로를 서서히 우울감에 적시기도 한다.

나는 왜 자꾸 슬픈 상상을 하는 걸까.

왜 행복에 겨워 잠들 수 없는 걸까?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과분하다고 느끼는 과도한 감사함에서 비롯된 결과물인지, 내면적인 자기파괴 본능이 발현된건지는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아무 쓸모도 없냐고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슬픔을 나의 페이소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많은 아티스트들 또한 슬픔을 통해 예술적 성장을 이룬다.

암막커튼으로 둘러싸인 퀴퀴한 자취방에 박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상상 속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만들고 머릿속에서 무슨 망상을 하고 있었을까.

설렘이 끝난 후에야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세바시 강의를 들었다.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쓴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셨다.

설렘이 끝난 후에야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먼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야하지 않을까?

어렵다.

내 이상형이 뭘까. 예쁜 여자? 예쁜 여자는 이상형이 아니라 모두의 이상향에 가깝다. 예쁜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앞에 예쁜 여자를 앉혀 놓으면 자신도 모르게 헤죽 웃어버릴 거다. 뭐, 사실 사람은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존재이다.

먼저 싫어하는 걸 적어 볼까. 난 내로남불이 싫다. 공정함에 대한 집착인지,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극도로 발현된 것인지는 몰라도(아마 후자에 가까운 것 같긴 하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상대방도 마찬가지의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는 슈퍼 에고가 기이한 균형을 맞춘 거겠지.) 가끔 자기합리화로 포장지를 2중, 3중으로 덧댄 내로남불을 보며 역겹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뭐, 내로남불이란 건,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천성(?)과도 같은 것임을 안다. 그러니 잘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지.

그럼 이제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자. 나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좋다. 같은 조건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성실한 이들에게 더 큰 점수를 준다. 그러니, 무엇이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를 하는 모습이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을 해내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되니까. 난 그 부분에 대한 가중치가 매우 클 뿐이다.

책임감과 배려, 헌신은 궤를 같이 하는 가치인 것 같다.
배려와 헌신은 참 어려우니까. 책임감과 마찬가지로, 배려와 헌신은 크고 작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려의 본질이 희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도 말뿐인 배려심을 부풀려 자랑하곤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싫다. No Pain No Gain 을 강하게 믿었던 사람이라 그런 걸까?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얻고 싶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지 못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진정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약간의 자유로움, 순간적인 안락함, 무조건적인 쾌락, 그리고 기타 잡다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살을 빼고 싶으면 운동을 해야 하고, 성공을 하고 싶으면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는 법이다. 배려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는 인간관계도 별반 다를 것이 없고.
그러니,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가치체계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면, 결국 중요한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사람들은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말은 또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말한다. 매일 설렐 수는 없다고. 그냥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 설렘이 사그라들면 사랑은 어떻게 변할까.
무뎌지거나, 애틋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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