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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Essay] 눈, 아저씨였던 시절의

GoldGiver 2022. 1. 6. 06:59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고 있다"

새파란 일병이던 시절,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 부대의 모 병장이 했던 이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는 당시에 1200미터 정도 되는 산 위에서 근무했었는데, 겨울이 되면 부대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나름 장관이었다. 그래서 밤낮이 바뀌는 근무를 뛰러 나가는 와중에도 나는 종종 설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 눈이 오는 날이면 교대근무로 잠든 나를 깨우는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제설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이다.
다행히 부대가 좁아서 제설할 영역이 많지는 않았지만, 제설이라는 건 너무나도 귀찮고 고된 일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사실 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정겨운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탓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애꿏은 눈에게 화풀이를 했다.

2016년 5월 5일. 화천 대성산 정상에서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내렸다.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도 어린이날 선물을 준다니,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제설 체험권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한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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