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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MiniEssay] 생각이 많아 슬픈 짐승이여

GoldGiver 2021. 12. 5. 07:08

나는 늘 웃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를 부러워했다.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개집청약 따위를 고민하지는 않을텐데.
무엇을 먹을지 생각할까? 초콜릿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코코아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적도 없을텐데.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골든 리트리버가 부럽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생각이 없었다면, 조금만 더 적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즐거움, 행복, 보람, 만족. 이 모든 것들이 내 생각에서 비롯되었듯이, 짜증, 화,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 또한 생각이라는 가지 위에 열매를 맺고 있다.

화가 난다. 하지만 화를 내서는 안되겠지. 그러니 속으로 삭인다. 조용히 숙성시킨다.
쉽지 않다. 흔히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라고 하던가. 살기 위해 필요한 산소를 조금 들이켰을 뿐인데 내 마음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상하고 뭉개진다.

슬프다. 나무의 뿌리가 비를 흡수하듯 생각은 기억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차라리 머리가 너무 나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으련만. 안 좋은 일은 아무것도.

지친다. 사고(思考)를 축복이라고 여겼던 사람은 동전에도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생각이 많아 슬픈 짐승이여.

오늘도 범람하는 생각을 맑은 못 위에 쏟아붓는다. 나의 장소, 나만의 쉼터.

어느새 말썽 꾸러기가 다가와 심술을 부리듯 물장구를 친다.

자그마한 연못에 흙탕물이 일었다. 연못을 위해 흙탕물을 건져내야지. 부유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보다,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담긴 흙탕물엔 빛나는 석영과 반짝일 기회를 노리는 사금이 가라앉아 있다.
미안해. 하지만 연못을 위해 너희를 보내주어야만 한단다. 흙탕물을 퍼내기 위해서.
아직도 연못에는 충분한 물이 남아있다. 그러니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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