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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MiniEssay] 뚜벅이와 붕붕이

GoldGiver 2022. 2. 16. 08:16

뚜벅뚜벅.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먼 거리를 가야 할때면 어쩔 수 없이 무언가에 내 몸을 맡겨, 내 튼튼한 두 다리에게 짧은 휴가를 허락해야 한다.

스무 살의 나는 차에 관심이 많던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삐까번쩍한 외제차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만약에 그때의 내가 포르쉐나 람보르기니를 갖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면, 돈을 악착같이 벌기 위해 더 노력했을지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허무주의를 숭상하며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동경했었다.
나그네, 듣기에는 참 좋은데 나그네는 배고프고 누덕누덕한 옷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했었다(홍콩 야시장에서 떨이로 산 진짜 헝겊조각을 학교에 입고 다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추억인데, 옆에서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

차를 뽑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마음가짐으로 고급진 독립맨션을 드나들며 고액 과외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만약 기생충이 7년만 일찍 나왔다면, 내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일에 보수적이며 극도로 안정지향적인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붕붕이를 끌고 다니지 않았던 나는, 나이가 들어 사회 초년생이 되서야 처음으로 핸들을 잡았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니 왜 이리 늦게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만약, 만약, 만약. 그놈의 만약에이지만, 붕붕이의 매력을 조금 더 일찍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 내 나이에 붕붕이를 마련하는 것이 늦은 건 아니지만서도.

붕붕이를 몰고 나서야, 조그만 붕붕이를 뽑고 기쁨에 젖어 자랑을 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뚜벅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건 또 아니지만.

그냥, 이곳 저곳 예쁘고 좋은 곳을 갈 정도의 붕붕이만 있으면. 당분간은 그 정도의 붕붕거림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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