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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Foodie's Study

#44. 아버지는 맛없는 집을 들르셨다. 본문

일상/에세이

#44. 아버지는 맛없는 집을 들르셨다.

머니덕 2022. 1. 12. 17:51

바야흐로 예약대란이다. 유명하고 맛있는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이 거의 필수가 된 시대가 열렸다.

물론 너무 장사가 잘 되서, 굳이 예약 따위 받지 않는 음식점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곳들은 추운 겨울날 롱패딩을 부여 잡으며 같이 온 친구나 연인들과 펭귄 놀이를 할 준비를 해야한다.

아버지는 자칭 미식가이기에 맛집을 찾아가시는 편이다. 포장도 자주 해 오시고.
자칭 미식가인 아버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혼(混)식가에 가깝다. 뭐든지 비비고 섞어 드시니까. 전문 용어로 쓰까 묵는다고 하던가?

맛집의 세계는 냉혹하다. 잘되는 곳은 잘되고, 안되는 곳은 안되는 법.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음식점의 경우 그 편차가 제법 크다. 바로 옆집에 붙어 있어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과, 파리만 날리는 집이 있을 정도이니.

아버지는 그런 한산한 가게를 보며 가끔 안타깝다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버지는 실제로 정말 장사가 안 되는 가게에 일부러 들어가신 적이 있다.

그 가게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가족이 다 함께 일하는 그런 느낌일 게다. 말을 잘 들어야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신다는 것을 믿었던 어린 시절, 착한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펼쳐봤던 '우동 한 그릇'이 떠오르는, 그런 허름하면서도 주인장의 친절함이 묻어나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혀는 본연의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음식은 맛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생각하셨다.

음식은 맛이 생명이니까. 음식점은 맛이 생명이니까.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원동력은 맛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이 넘치는 음식점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꺼져가는 생명력으로 존폐를 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 나머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음식이 맛이 없다고. 물론 기분 나쁘게 이야기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돌려 말씀하셨을 거다. 인공적인 맛을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와 추가적인 개선점을 가게 주인께 전달드렸다.
괜한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가게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나온 참견이 아닐까. 오래간만의 손님이 준 슬픈 피드백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웃으셨는지 우셨는지는 나의 관할 밖에 있다.

그 가게가 잘 되는지 아닌지조차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아버지는 나름대로의 조언을 건낸 것이겠지.

주변의 맛집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도 살기 위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러니 맛집이 맛 없는 집들을 박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맛 없는 집이 환골탈태를 하여 기존의 맛집들을 몰아내기를 바라는 것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없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불행해지는 소원을 매일 빌면서도 이를 외면한다. 왜냐하면 마음 속으로는 완전한 행복을 꿈꾸기에. 누군가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소원에는 면죄부가 따라붙고 있다.

맛 없는 집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섞인 글을 쓰는 나조차도, 여전히 맛집을 가길 바란다.

그놈의 맛이 뭐라고, 그거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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