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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험이 망하고 난 뒤

hashnut 2019.11.05 11:32

 

 

나는 옅은 기대감이 뭍은 손을 움직여 내 점수가 저장된 파일을 열었다.

 

어디보자155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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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4342 : 58

2014-15502 : 13

2014-15896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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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곤 이내 그 멈칫거림조차 멈추었다.

 

 

- 하다.

 

나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나의 점수를 보고 그저 멍할 뿐이었다.

 

이전 같으면 분노와 부끄러움, 수치심 따위의 여러 감정이 나를 사방에서 괴롭혔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평정을 찾은 걸까? 익숙해진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아니, 즐겁기는 커녕 몸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축 처지는 느낌. 활기차게 떠들어 대는 밴드 보컬의 소리가 밋밋하기만 하다.

 

 

, 포기가 뭘까?

 

 

오늘 나는 그 문턱을 보고 온 것 같다. 웃으며 입으로만이번 시험은 포기했어~’ 따위를 내뱉는 상대는, 적어도 진심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포기하고 싶다는 감정은 그것보다는 은밀히, 하지만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그림자로 나를 감싸가고 있었다. , 이게 포기한다는 건가.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건 생각보다 불쾌하고 슬픈 감정이었다.

 

 

일단 집에 가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다시 20분의 시간을 허둥지둥 낭비해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 자주 들르는 빵집을 보며, 오늘도 고생하시는 버스 기사님에게 인사하며 나는 무례하고 모순된 생각에 잠기었다. 사회에서 걸러진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엔 사회로부터 매겨지는 등급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스스로를 수재라고 생각했던 그 때가 언제였지?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언제였지? 사회로 나오면, 큰 일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언제였지? 언제부터 나는 오늘 하루만을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았었지?

 

 나는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사실 대단하지 않은 걸까? 나는 특별하지 않은 걸까?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길들 중 하나를 그저 따라가고 있는 걸까? 나는 사실 아주 평범한 걸까?

 

감정의 소용돌이는 나를 집어삼킬 듯 하면서도, 각성제처럼 내 정신을 마구 때려 잠을 내쫓았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돼. 아직 많이 남았어. 그럴 때일 수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 스스로 믿지 않으면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어. 할 수 있다고 외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2017년 겨울에 남긴 부끄러운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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