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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Foodie's Study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욕구일까. 아니면 내면을 관찰하기 위한 용감한 시도일까. 즐거울까. 과연 행복할까. 그렇게 해서 오롯이 혼자가 된다면, 또다시 홀로 서기를 해야한다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흥겨운 노랫소리까지 두꺼운 유리창으로 막아버린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갈망을 새로움에 대한 나의 집착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말 그대로 떠나는 행위 그 자체를 수행하고자 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어디로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중요했었다는 거다. 지금 나를 얽매이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온갖 구속과 사..
요즘 들어 내글이 부쩍 재미없어진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타인의 삶을 관찰할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만화영화의 거장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창립가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관찰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작품활동이라는 게 사실 인간관찰에서부터 시작하는게 아닐까. 어찌되었든, 지금의 내 글은 새로운 맛과 향이 배어들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아무리 요리를 맛있게 하려 애써도, 다채롭지 못해 무미건조할 수밖에. 재료를 아끼는 식당이 식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요리만을 내놓는다는 핑계를 대듯, 나 또한 최소한의 글감을 그럴듯하게 플레이팅하려만 한다. 그러니 골자는 같을진대, 내용을 포장하는 단어들과 표현에 변주를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변주에 리메이크, 샘플링에 표절까지 온갖 도구들을..
밀치며 나아간다. 성의 없는 사과를 건내며 등산복 입은 아주머니의 가방을 툭 친다. 환승이 다 같은 환승이 아닌가보다. 빠른 환승, 빠른 출구.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서, 무례함을 매일 연습하는 사람들. 무료한 표정으로 몇 초 남짓한 시간을 아끼려는 평범한 사람들. 한가함에 괴로워하면서도 뒤쳐지는 것을 견디지못하는 사람들. 내일도, 그 다음날도 무질서한 행렬을 만들 사람들. 빠른 출구는 오늘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어둑한 스탠드 불에 의존해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듣는 것. 신나는 노래여서도 안된다. 무조건 감성에 푹 빠질 수 있어야만 해. 그러니 오늘도 원슈타인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아볼까. 푹 빠지고 싶으니까.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마네킹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난 영화가 좋아지고 있다. 흠뻑 젖고 싶으니까. 슬픈 이별 노래든, 달콤한 사랑 노래든. 아니면 감성 넘치는 힙한 음악이든.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마리오네트가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일기로 쓰려던 토막글조차, 멋들어진 에세이로 변모시키려는 욕심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다. 일기에 왜 퇴고 따위를 해야 해. 그냥 내뱉으면 되는 것을. 일기를 쓰는데 왜 그리 머리를 싸매야 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면 되잖아. 또또, 점점 길어지고 있는 글을. 봐봐, 라임까지 맞추려는 어설픈 시도를. 나의 욕심. 끝없는 인간의 욕심. 나만이 볼 일기마저 니스칠을 하게 만드는 덧없는 허영이여.
아버지는 나에게 이르셨다. 불의를 보면 꾹 참고 지나가라고. 잠깐만. 나에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거나, 내 아버지의 인간성을 속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잠시만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누군가가 나에게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작년에도, 5년 전에도 그랬듯 아버지를 언급할 것이다. 왜 아버지를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꼽냐고? 당연하게도,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기에, 능력이 정말 출중하시기에... 같은 피상적인 조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에게 있어 너무나 고마우신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게 아닐까. 반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어쩌면 주..
들어봐. 내가 노래를 들으며 에스컬레이터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는데 말야. 내려가다 보니 스쳐 지나치는 사람들도 역시 나와 같은 에어팟 프로를 갖고 있더라고. 근데 그 중 한 분이 에어팟 프로를 떨어뜨린거야. 케이스를 닫다가. 어쩌긴 어째, 친절함이 모토인 내가 못 본척 할 수 없었지. 그래서 마치 카드 마술을 하듯 과장된 손짓으로 튕겨 나가는 에어 팟을 하나, 둘 집어 그분에게 건내주었어. 깜짝 놀라 청설모처럼 눈을 똥그랗게 뜬 그분은 에어팟 한쪽을 어색하게 들고 있었지. 마침 나는 에어팟을 끼고 있었기에, 왼쪽 콩나물을 잠시 빼어들고 그분의 에어팟에 가볍게 부딪혔어. Cheers. 에어팟 건배와 함께 나는 나지막이 그런 문구를 내뱉고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분에게는 평..
사람들은 전부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행자들은 남들과 다른 천쪼가리를 갖기 위해 백화점을 걷고 또 걷는다. 뒤적거린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듯이, 끝없는 탐구심은 멈출 줄을 모른다. 지치지도 않나 보다. 왜 모든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입으려 하는 걸까. 같으면서도 조금 다르게. 비슷하면서도 특색있게. 왜일까. 모두가 꿈꾸는 똑같은 얼굴을 갖기 위해 분주하면서, 옷에는 왜. 강남언니가 되기 위해 따라쟁이라는 오명도 감수하면서 왜. 똑같은 눈, 똑같은 코, 똑같은 입을 갖길 바라는 사람들. 하지만 유독 옷에는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 관대함을 경험하지 못한, 불쌍한 옷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고 싶은 날이다. 선택받지 못한 피조물에게 축복을. 다음 생에는 누군가의 옷장에 걸려 있기를.
가치란 무엇인가. 무엇을 가치있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이 처음 열풍이 불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무엇이 가치 있길래 사람들은 데이터 쪼가리에 그리도 열광하는 것인가. 나 또한 비트코인 기술서적을 읽으며, 실제 투자도 하고 글도 쓰며 스타트업에도 기웃거렸다. 너무나도 궁금했기에. 당췌 그게 무엇이길래 그리도 가치가 있다고 하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훌륭하다 한들, 결국 가치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었다. 상호간의 합의, '이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공통의 신뢰가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고 있었다. 출퇴근길을 책임지는 버스 유리창에는, 오늘도 명품 세일을 홍보하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명품은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억 소리가 나는 돈을 지불할 정도의 값어치가..
인생은 혼자다. 그렇기에 더욱 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를 해부하며 진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외로움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 미묘해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충족되지 못할 근원적인 공허함으로 정의내렸다. 정말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다른 사람을 만난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눈다. 웃고 떠들고 포옹하고, 교감한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가까우면서 먼 관계를 잘도 맺는다. 하지만 그들의 하소연은 멈출 줄을 모른다.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고독하다는 불편한 투정과, 사랑받고 있지 않음에서 오는 환상통을 느낀다는 우울한 푸념. 그리고 사..